임진혁 청년
193회차 치유대성회 참석 이후
이제는 하나님의 힘 주심으로 보내시는 그 곳을 향하여 날아보고 싶습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계속 착각했습니다. 제 마음의 중심을 내어 드릴 때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들을 제 열심으로 성취하는 것으로 바꿔서 189회차 성회 참석 이후 지내왔습니다.
은혜에 감사하지만 그에 어찌할 바를 몰라 여기서 저기서 실수할까 죄를 더 지을까 머리를 싸매고 ‘시간과 양적으로 무엇을 했니? 못했니?’를 마음에 두고 잘못된 생각에 붙들려 깨어 있지 못하고 불안한 감격으로 한 달을 보냈습니다.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많이 고민했습니다. 무엇일까? 하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크게 쏟아부어 주실까?
악한 영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빠져나간 자리에 공허함과 탄식이 찾아왔습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 “모집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뒤로 모셔 두고 저 혼자 어디로 갈지 두리번거리는 다시 ‘죄’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생각에 붙들려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근심은 회개와 성경을 더 깊고 삶의 하나하나에 대조해 보며 읽어 가게 만드는 힘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후 7:9)”
제가 무얼 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이제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더 깊이 만나기를 바라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날개와 닭” 닭…. 비대한 몸에 비해 못나는 날개 어딘가 고장 난 신앙
독수리와 같이 날개를 펴고 성령님과 함께 날아오르는 능력 있는 기쁨이 넘칠 신앙생활 어디에 있을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롬 5:3)과 같은 시간과 삶 속에서 빚어지는 능력(실력)을 곰곰이 말씀과 되짚어 보니 지금 즈음 병든 닭에서 닭장 속을 늠름히 걸어 다니는 회복된 닭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저를 포기했었습니다.
처음 사역부터 오늘까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열심히 숨겼습니다.
“해 놓은 것도 없는 주제에 대단한 핑계까지? 그러고도 사람인가?”라는 좋은 명분이죠. 이 사단의 참소를 따라 우선은 저는 속아 넘어갔고 하나님도 속이고 성도도 목사님도 다 숨겨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육체의 아픔으로 잘 포장하기에는 31살의 나이 중에 20년가량을 제대로 해 볼 수도 해 놓은 것도 없는 삶의 비참함은 누가 바라볼까 봐 예수님을 잘 믿는 “척”하고 있다는 걸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시작도 기쁨의 교회 치유대성회 참석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에 의해 온 것을 알고 감사하면서도 숨기기에 애쓰고 숨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는 걸 제가 모른 척을 오랜 시간 해 오니 사단은 스스로를 속일 수 있도록 저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습니다.
계속 이루어지는 사역 속에 제가 “회칠한 무덤”처럼 잘 포장해 둔 아픔은 부서지고 쪼개져 드러났습니다. 제 중심에는 혈통을 타고 들어온 “무속의 영, 제사밥 받아 먹던 영”이 있었는데 그 영들의 설득에 따라 울면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잘 보이려는 척하면서 상처는 죄다 숨겨 두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신앙을 쌓아 놓게 만들었습니다.
오래전에 검사 받고 통증을 만드는 게 아닌 질병을 협력 사역자 목사님이 앉았던 저와 대화 하시던 중에 짚어 주신 바람에 다시 알았습니다. 상처를 안 받고 성격이 시원시원한 게 아니라 ‘전두엽 기능 손상’으로 운동 신경이 남들보다 떨어지고, 좌·우뇌 협응력 문제, 기억력에 문제가 있고, 특히나 ‘감정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걸요. 놀랐습니다. '처음 뵌 목사님이 어떻게 다 아시지?'
15년 전 즈음에 정신과에서 기능 검사와 뇌를 촬영하고 뇌파 검사 했을 때 많이 망가져 있다고 했고, 분노 조절이 안돼서 다량의 약물을 먹으며 지내온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10년 전 즈음 분노 조절이 잘 되면서 약 복용을 끊었지만, 글을 읽고 생각을 하고 누군가와 공감하는 능력이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떨어지면서 좁디좁은 사회생활 누구를 만나지 않고 삶의 실력을 잃어버린 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몸이 아파서 뭘 많이 못 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더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구하고, 주신 능력으로 맞서지 않았다면 육체의 불편감 감소 이후 다시 저를 무너뜨릴 사단이 활용할 ‘틈’을 큼지막하게 남겨 두고 살아갈 뻔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대 임명식 이후 몸이 아픈 사람들만 강대상 위로 올라오라고 하셨을 때,
그 기도를 받는 중에 놀라웠습니다. 머리가 점점 맑아지고 관절과 골반의 통증이 줄어들고 눈이 맑아져 감을 느꼈습니다.
이종선 목사님께서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하셨을 때에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도 모르게 지른 소리 “하나님의 권능”…이다 라는 생각 말고는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저는 빛이 아니고 빛이 비추었기에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비추어 주셨기에 제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보여졌습니다. 막연한 공포가 아닌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사단의 공격입니다.
악한 영의 실체와 크신 하나님을 알아가며 용기가 생겨나게 된 성회였습니다. 영, 혼, 육의 회복 이후를 떨림으로 기대합니다.
너무도 크고 작은 간증이 많습니다.
저 스스로 생각지도 못할 것들을 알게 하시고, 찾아주셨습니다. 이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충성으로 싸워 이겨 나갈 것입니다.
지금 바라신 믿음의 분량에 자족하며, 인도하심으로 자라나고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제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열심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어머니 이름으로 한 평 헌금을 지난 성회 이후로 결단하고 내어 드리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평 헌금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도우시고, 기쁨의 교회를 오가는 데 드는 교통비를 포함한 적지 않았던 금액이 생각지도 못한 일로 충당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삭 = 웃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세상을 뒤집는 것도, 제가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권세 잡은 녀석이 만드는 고난과 죽음에서 웃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분명 눈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졌는데 검사 받을 비용이 부담스러워 간증에 내어놓을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일 수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손에 쥔 것을 안 놓고 소리 지름으로는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이 치유대성회에 꼭 붙어 있으면 기름 부음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고 손에 쥔 게 풀어지고 못 자국 난 손을 붙잡고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손에 붙이신 이긴 싸움 충성되이 행하겠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냐?”라는 사단의 참소 짓이겨 밟고 하나님을 바라겠습니다.
제가 받은 큰 은혜는 제 능력으로 제게 생긴 문제들을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문제들로 하나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주께서 내게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에(욥 7:19)” 믿습니다.
말의 순서가 잘 안 맞는데 어떻게 더 정리해야 할지 어렵고 떨리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 영광 받으소서”
임진혁 청년
193회차 치유대성회 참석 이후
이제는 하나님의 힘 주심으로 보내시는 그 곳을 향하여 날아보고 싶습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계속 착각했습니다. 제 마음의 중심을 내어 드릴 때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들을 제 열심으로 성취하는 것으로 바꿔서 189회차 성회 참석 이후 지내왔습니다.
은혜에 감사하지만 그에 어찌할 바를 몰라 여기서 저기서 실수할까 죄를 더 지을까 머리를 싸매고 ‘시간과 양적으로 무엇을 했니? 못했니?’를 마음에 두고 잘못된 생각에 붙들려 깨어 있지 못하고 불안한 감격으로 한 달을 보냈습니다.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많이 고민했습니다. 무엇일까? 하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크게 쏟아부어 주실까?
악한 영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빠져나간 자리에 공허함과 탄식이 찾아왔습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 “모집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뒤로 모셔 두고 저 혼자 어디로 갈지 두리번거리는 다시 ‘죄’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생각에 붙들려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근심은 회개와 성경을 더 깊고 삶의 하나하나에 대조해 보며 읽어 가게 만드는 힘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후 7:9)”
제가 무얼 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이제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더 깊이 만나기를 바라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날개와 닭” 닭…. 비대한 몸에 비해 못나는 날개 어딘가 고장 난 신앙
독수리와 같이 날개를 펴고 성령님과 함께 날아오르는 능력 있는 기쁨이 넘칠 신앙생활 어디에 있을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롬 5:3)과 같은 시간과 삶 속에서 빚어지는 능력(실력)을 곰곰이 말씀과 되짚어 보니 지금 즈음 병든 닭에서 닭장 속을 늠름히 걸어 다니는 회복된 닭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저를 포기했었습니다.
처음 사역부터 오늘까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열심히 숨겼습니다.
“해 놓은 것도 없는 주제에 대단한 핑계까지? 그러고도 사람인가?”라는 좋은 명분이죠. 이 사단의 참소를 따라 우선은 저는 속아 넘어갔고 하나님도 속이고 성도도 목사님도 다 숨겨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육체의 아픔으로 잘 포장하기에는 31살의 나이 중에 20년가량을 제대로 해 볼 수도 해 놓은 것도 없는 삶의 비참함은 누가 바라볼까 봐 예수님을 잘 믿는 “척”하고 있다는 걸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시작도 기쁨의 교회 치유대성회 참석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에 의해 온 것을 알고 감사하면서도 숨기기에 애쓰고 숨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는 걸 제가 모른 척을 오랜 시간 해 오니 사단은 스스로를 속일 수 있도록 저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습니다.
계속 이루어지는 사역 속에 제가 “회칠한 무덤”처럼 잘 포장해 둔 아픔은 부서지고 쪼개져 드러났습니다. 제 중심에는 혈통을 타고 들어온 “무속의 영, 제사밥 받아 먹던 영”이 있었는데 그 영들의 설득에 따라 울면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잘 보이려는 척하면서 상처는 죄다 숨겨 두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신앙을 쌓아 놓게 만들었습니다.
오래전에 검사 받고 통증을 만드는 게 아닌 질병을 협력 사역자 목사님이 앉았던 저와 대화 하시던 중에 짚어 주신 바람에 다시 알았습니다. 상처를 안 받고 성격이 시원시원한 게 아니라 ‘전두엽 기능 손상’으로 운동 신경이 남들보다 떨어지고, 좌·우뇌 협응력 문제, 기억력에 문제가 있고, 특히나 ‘감정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걸요. 놀랐습니다. '처음 뵌 목사님이 어떻게 다 아시지?'
15년 전 즈음에 정신과에서 기능 검사와 뇌를 촬영하고 뇌파 검사 했을 때 많이 망가져 있다고 했고, 분노 조절이 안돼서 다량의 약물을 먹으며 지내온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10년 전 즈음 분노 조절이 잘 되면서 약 복용을 끊었지만, 글을 읽고 생각을 하고 누군가와 공감하는 능력이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떨어지면서 좁디좁은 사회생활 누구를 만나지 않고 삶의 실력을 잃어버린 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몸이 아파서 뭘 많이 못 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더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구하고, 주신 능력으로 맞서지 않았다면 육체의 불편감 감소 이후 다시 저를 무너뜨릴 사단이 활용할 ‘틈’을 큼지막하게 남겨 두고 살아갈 뻔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대 임명식 이후 몸이 아픈 사람들만 강대상 위로 올라오라고 하셨을 때,
그 기도를 받는 중에 놀라웠습니다. 머리가 점점 맑아지고 관절과 골반의 통증이 줄어들고 눈이 맑아져 감을 느꼈습니다.
이종선 목사님께서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하셨을 때에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도 모르게 지른 소리 “하나님의 권능”…이다 라는 생각 말고는 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저는 빛이 아니고 빛이 비추었기에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비추어 주셨기에 제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보여졌습니다. 막연한 공포가 아닌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사단의 공격입니다.
악한 영의 실체와 크신 하나님을 알아가며 용기가 생겨나게 된 성회였습니다. 영, 혼, 육의 회복 이후를 떨림으로 기대합니다.
너무도 크고 작은 간증이 많습니다.
저 스스로 생각지도 못할 것들을 알게 하시고, 찾아주셨습니다. 이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충성으로 싸워 이겨 나갈 것입니다.
지금 바라신 믿음의 분량에 자족하며, 인도하심으로 자라나고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제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열심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어머니 이름으로 한 평 헌금을 지난 성회 이후로 결단하고 내어 드리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평 헌금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도우시고, 기쁨의 교회를 오가는 데 드는 교통비를 포함한 적지 않았던 금액이 생각지도 못한 일로 충당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삭 = 웃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세상을 뒤집는 것도, 제가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권세 잡은 녀석이 만드는 고난과 죽음에서 웃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분명 눈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졌는데 검사 받을 비용이 부담스러워 간증에 내어놓을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일 수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손에 쥔 것을 안 놓고 소리 지름으로는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이 치유대성회에 꼭 붙어 있으면 기름 부음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고 손에 쥔 게 풀어지고 못 자국 난 손을 붙잡고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손에 붙이신 이긴 싸움 충성되이 행하겠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냐?”라는 사단의 참소 짓이겨 밟고 하나님을 바라겠습니다.
제가 받은 큰 은혜는 제 능력으로 제게 생긴 문제들을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문제들로 하나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주께서 내게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에(욥 7:19)” 믿습니다.
말의 순서가 잘 안 맞는데 어떻게 더 정리해야 할지 어렵고 떨리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