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사무엘 캠프 간증

제28차 다니엘 캠프를 다녀오며

신인수
2023-09-12

제 지나온 삶과캠프 후기(간증?)입니다.

본래라면 부끄러워서 하지 못할 말들도 많겠으나, 일정중에 캠프의 다른 지체들이 숨김없이 간증하셨던 것을 듣고, 혹시라도 제 이야기가 훌륭한 정면교사의 예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반면교사의 예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 이야기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은혜를 받을 만한 지체에게 더욱 은혜 부어주셔서 제가 반면교사가 되어 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은혜의 삶을 사는 지체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1. 저는 교회생활을 오래하기만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저는 열매맺지못한채로 돌길에 방치된 이름모를 깡마른 잡목과도 같은 삶입니다. 

초등학교 때, 맛있는거 먹으러가자는 말에 이끌려 갔던 교회는 당시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간식을 먹으러 가는 곳이었습니다.

저희집이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을 뿐더러, 부모님께서 근검절약을 외치며 사시는 분이시다보니, 공식적인 군것질거리는 한 달에 한 번 어쩌다 부모님이 기분이 좋으면 사오시는 뻥튀기였습니다.

그마저도 전 제 입맛에 맞지않아 거의 안먹었습니다. . 제 주 간식거리는 어쩌다 천원씩 받는 용돈으로, 요즘도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00원에 1개의 후랑크소세지를 익혀서 양념치킨소스같이 달짝지근한 소스에 굴려가며 익혀서 팔았습니다.

뻥튀기등의  간식으로 부족해서 매일 주일이 기다려졌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간식이 나올까?'하면서요.


그렇게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될때쯤이었을까요? 안그래도 작던 교회인데,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교회로 데려왔던 집사님 일가와 교회가 분열이 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성도 수가 적던 지방 교회였느데, 말 그대로 반타작이 났습니다.

그 집사님 일가는 혈연으로 4가정이 연결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었고, 어렸던 제가 보기엔 굉장히 교회봉사를 열심히 섬기시던 분이라서 그렇게 갑자기 나가버리실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 밑으로 남은 학생~청년들은 중등부 2명(저포함), 고등부 1명,  초등부 2명, 유치부 1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언제인가, 대예배 찬양인도를 제가 맡게된 것을 기점으로하여 타의 반 의무감 반으로 계속 회장의 직함을 달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도 못하고,  욥기 42장 5절의 말씀의 일부 구절처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의 상태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지식으로만 안체 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 쯤에는 열심히 딴짓을 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하긴 했었는데, 설교 중에 이종선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지혜없는 자가 저였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에서 나오는 것은 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공부했던 것도 시험때만 되면 잊어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11년에 첫 수능을 봤는데, 속된말로 죽을 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평균 4~5등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건 아무리해도 억울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재수를 하고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광주로 가서 반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고백컨데, 저는 쾌락중독입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푸는 두가지 방법이 딱 두가지 있었는데, 그게 판타지나 무협 소설보기와 게임하기였습니다.

게임에 얼마나 빠져들었냐면, 제가 2011년 수능을 봤다했으니, 재수를 했으면 2012수능을 봤겠죠?

제가 어릴때 하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라는 게임입니다.

디아블로 3이라는 게임이 2012년 5월에 출시됐습니다.

그래서 그 게임을 정말 열심히 즐겼습니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인 형(저희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당시 지금 제나이였던 청년인 형이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저는 아동부를 담당했습니다.)과 약속을 했었는데, 저희끼리는 이미 남자들끼리 스타크래프트를 종종 친목목적으로 자주해서 블리자드 아이디가 친구추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형이 접속할 때 제가 접속해있으면 제가 접속해있다는 알림이 뜹니다.

그래서 아직 그 형에게도 고백 못하고 사과도 못했지만,

그 형이 '인수야?'라고 대화를 걸었을 때 가슴을 졸이면서 일부러 대답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좀 있다 '인수 아니니?''하고 물어봤을 때, 저는 '아뇨 인수 친구입니다. 인수가 이거 대신 키워달라고해서 키우고 있어요.'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식으로 솔직히 게임에 반쯤 미쳐서 살았습니다.

당시에 그렇게 살면서 남의 돈에 손을 댄 경우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님의 돈에서부터였습니다.

저희집은 과일장사를 했어서, 어머니께서도 아버지를 도우러 나가있으실 때가 많았습니다.

또 500원 단위의 과일들도 팔았어서(바나나 반손 등) 따로 동전을 모아두는 도자기로 된 통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100원단위로 몰래 빼가다가, 너무 많이 빼가서 양이 줄어든게 보이니, 500원짜리도 섞어가면서 빼가서 썼습니다.


제가 언젠가 어머니께서 당신의 지갑에서 빳빳한 새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서 주시는 것을 제 머리가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종종 피시방비용이 필요할 때 만원씩 빼서 쓰고, 안들켰다고 좋아하면서 피시방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옛 말처럼, 제가 중고등부를 맡고있었는데, 총무도 따로 없었기에 겸임이었습니다.


청년부 통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게 제돈같아서, 그 돈이 10-20만원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지금돈으로 하면 40만원에서 80만원쯤 됐을 것 같습니다.(중학생 때 제가 살던 시골에서  튀김이 4개 천원이었는데, 지금은 서울은 1개에 천원꼴인것으로 역계산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자기가 휴대폰을 바꾼다고, 휴대폰 살사람? 하는거에 겁도없이 손을 들었습니다.

스마트폰도 아니고, 일반 2g폰이었습니다. 그 폰을 구매하려던 이유는폰당시 제가 하고싶던 알피지 폰게임을 하려고 였습니다.


앞에 교회 학생부 재정 이야기한 것으로 예상하셨겠지만, 그 학생부 재정으로 좋다고 그 휴대폰을 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저에게는 참 원통하게도, 그 휴대폰이 정상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열어본적이 없었기때문에, 왜 그런지 그 때 이유를 몰랐습니다. (유심칩때문에)

이렇게 헛된 시간으로 헛된 지식으로만 예수님을 알며 살았었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모아주신 것 같습니다..

교회의 다른 형의 권유로 저는 ESF라는 대학교 기독학생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저를 잘 아는 교회 형들답게 저를 꼬실 때에 맛있는거 많이 먹을 수 있다고 꼬셨습니다.

세상에, 처음 갈 때가 마침 새친구 초청이라해서 간식도 많이 사서 환영예배를 하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고민할 것도 없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동아리는 각 도시 대학교를 거점으로 삼으며 대학생 복음화 목적 및 선교의 초교파적이며 전국적인 동아리인데, 그 곳에서 에서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오랜 시간의 짝사랑을 시작하기도 했고, 전국의 동아리에서 모여서 하는 수양회를 가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이단을 대면하기도 했습니다.(이에 대한 이야기현재 받은 마음이 아니기에 추후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크게 깨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바뀌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다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제 죄가 너무 깊어서 그저 허탄한 욿림으로만 끝나고 많았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지체들은 돈을 모아서 해외선교를 나가기도 했지만,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해외선교를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못한게 아니고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심중으로는 하나님께서 제게만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며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 졸업을 하고 돈을 벌기위해 서울로 왔고, 지금 섬기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참으로 평소에도 감사했던 것 중 하나는,

주님의 인도하심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물리적으로 떨어져 살게된 이후에 동생이 집에 올때마다 아버지와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동생에게 조금씩 잘 대해줬더니

일상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눌정도로 회복됐고,앞서 말했던 문제는 예전에 내가 철이 없었지.... 내가 미안해라며 서로 그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3. 제 상태는 제 뜻대로 살아온 결과들입니다  


제 상태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2011년 수능 이후 2012년 1월 초, 저희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시고, 남자가 스물이 넘으면 독립을 해야한다 라는 말을 저에게 항상 자주 하셔서 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자, 저에게 방금 말한 이유로 너도 일을 해보라면서 옆에서 장사하시던 생선가게 사장님의 남편분을 통해 공사장에서 일을 하게 됐고, 거기서 발을 구덩이에 굴러 우측 인대가 절단되어 재건수술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습니다.

다른 얘들은 다 좀 넉넉한 부모님 만나서 재미있게 즐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폭력적이고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서 매일같이 장사를 도와주고해도 내 노고에 대한 감사도 돈도 받고있지 못한채로 살다가 이렇게 다리를 다쳤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30mmHg 180mmHg.

이 숫자가 단어만 보고 이게뭔지 짐작가는 분이 있으실까요?

제 가 약을 안먹던 상태에서 측량된 최고혈압과 그 때 같이 계측된 이완기 혈압을 10단위까지만 자른것입니다.

선릉에서 살 당시 다니던 내과원장님이 '어떻게 살아있어요? 젊은 사람이 이러면 곧 죽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이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 알게된 사실인데, 

저는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 난치병이 있었습니다. 이 난치병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우측 중대뇌동맥 뇌경색이었습니다.

그래서 22년 12월에 뇌경색을 앓은 뒤에 주님의 은혜로 23년 4월에 재활병원까지 퇴원을 마쳤습니다.

이후로는 너무나 육체적으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며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 체력이 부족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퇴원을 하기 직전에, 스펙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몸도 안좋은데, 일반적인 직장에서 취직이 잘 될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실무적인 일도 배워보자 해서 바리스타 학원도 등록해보자 했습니다.

보통 영어공부르 한다하면 먼저 생각나는게 해커스토익 이런 책일텐데, 저는 그 때 정신이 뭐에 홀렸었는지,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며 영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어플을 설치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기꾼을 만나, 제가 서울생활을 하며 모았던 돈을 모두 잃었습니다.(2년동안 모은3천만원. )


4. 제 마음을 새롭게 하여주시는 하나님


사실이 다니엘 캠프에 오는 것은 제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목사님이 광고시간에 청년부 MT를 본래 계획했으나 다니엘 캠프로 대체하겠다는 광고는 들었습니다.

가겠냐고 세번정도 묻긴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고싶은 마음이 없어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기에 저는 안가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8월 6일에 '다음주 다니엘 캠프입니다.', '청년들은 다음주에 올 때 짐 챙겨서 오세요'라고 했을 때 '뭐지? 난 간다고 한 적 없는데...?' 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임의로 신청하신줄 알고, 사실 속으로 사모님께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모님... 저는 쉬고싶은데요...'


지금 이 다시 생각해보면, 다니엘 캠프는 하나님께서 목사님과 사모님을 통하여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돌같은 저를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끌어내신 것입니다.

제가 성령의 역사를 강하게 경험하진 못했지만,  제가 캠프 중 내내 아파 타이레놀까지 먹었던 허리가, 거의 마지막쯤 무대로 나가서 입구에서 바라볼때 왼쪽 끄트머리에 서서 기도받은 이후 통증이 확연히 가라앉아 마지막 찬양 페스티벌을 더 즐길수 있었습니다.

예언사역 때 협력사역목사님을 통하여 제게 주신 말씀은


'내가 맞는 말을 하는데, 상대가 안들어줘서 화날때가 많아요?'가 첫번째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주님. 특히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그래서 화가 날 때가 많고 갑갑할 때가 많았으며,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제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는 항상 제 나름의 제게 합당하고 상식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누군가를 섬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해주는 만큼 존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듯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인수형제를 사랑하신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은 159차 치유대성회를 통하여 제 삶을 더욱 돌아보게 만드셨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인수형제의 기도를 들으신다'였습니다.

제 앞선 문제들 때문에 저는 항상 근심이 많았습니다. 캠프중 들었던 한 간증의 고민은 남을 해치는 것이었지만, 저는 제가 없어지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가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제가 힘들어서 하소연했던 이야기들을 주님께서 들으신다고 하시니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협력사역자분께서는 '기도의 형식에 얽매이지마라, 대화하는 것처럼 해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라는 내용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도를 했던 김형통 형제님이 은혜를 받는 꿀팁이라며 말해주신대로 일단 옆사람 어깨를 잡고 뛰라는 말에 제 교회의 학성형제의 어깨를 잡고 일단 뜀으로써(지금은 없는 학성. 언제나고마워.)제가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지체들 처럼 팔팔 나는것은 아니지만 살짝씩 뛰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준 다니엘 캠프 섬김이들과 말씀 전하신 목사님들과 협력사역자로 섬겨주신 목사님들과 사모님들과 식사를 섬겨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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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간증은 8월 16일 작성되어 이후의 일들이 미반영 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9월 3~5에 있던 치유대성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한 번 더 만져주시며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글을 작성하는 9월 12일 기준으로 3달간 구하지 못했던 일자리를 구하여 9월 18일부터 교육후 10월에 입사하게될 예정입니다.

저를 다시 살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